뜻 밖의 대대적 환영에 놀랐습니다. 태극기까지 구해서 흔들며 환영하는 영아생존 프로그램 어머니들. 이들은 성가대복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 이 프로젝트 호스트인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이날 특별찬양을 위해 성가대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 전경. 현재 250여 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고 있고, 421명의 컴패션 어린이들을 돌보는 교회입니다. 8년 전 처음 컴패션 사역을 시작할 때는 100여명의 성도에 150명의 컴패션 어린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컴패션 사역이 교회 부흥도 가져오고, 지역사회와도 좋은 관계를 맺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애브너 목사님의 환영인사.
영아생존 프로그램에 있는 젊은 엄마들의 찬양. 긴장했는지 모두 굳은 표정이었지만, 그들이 부르는 찬양의 가사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I'm trading my sorrow; I'm trading my shame.
I'm laying it down for the joy of the Lord.
(Darrell Evans의 찬양을 영어가사를 파워포인트에 띄워가며 불렀습니다.)
이번에 영아생존 프로그램을 졸업한 3살짜리 어린이들
성극까지 준비한 어머니들. 우리는 수업광경을 참관하러 간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그들은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준비하고 우리 선교대원들을 맞았습니다. 그들에게 후원자(스폰서)가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둥들이라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 불과 17명의 자원봉사자들이 421명의 어린이들을 위해 주6일, 오전반, 오후반을 풀타임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한 교사가 40여명의 어린이들의 신상과 교육을 책임집니다. 컴패션이 기부액의 80% 이상이 어린이들에게 직접 가게 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일은 무료봉사하는 자원봉사자 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에, 컴패션의 인건비는 본부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중간 역할하는 faciltator로 국한할 수 있었습니다.
컴패션 수업 참관 - 컴패션 양육 프로그램은 일종의 방과후 학교. 일주일에 3번을 와서 공부, 운동, 특기수업을 한다. 오후에 학교가는 어린이들은 오전에 와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컴퓨터 수업실. 12살 이상의 어린이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교육을 받는다. 3년 동안 교육 받은 후에는 정부에서 인정하는 수료증도 발급해서, 취업에 유리하게 돕는다.
어린이들이 만든 핀야다(pinada). 교인들이 종종 사가기도 한다고.
식사 시간. 이곳에서 먹는 샌드위치가 하루 중 유일한 식사인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영아생존 프로그램을 위한 아기방. 아기와 엄마들이 한달에 3번 정도 와서 운동과 교육을 받는다. 직접 못오는 사람들을 위해 가정방문을 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를 운동시키면서 아기 엄마에게 가르치고 있는 전문가의 모습.
미국에 사는 우리도 간난아기를 운동시키는 것은 생각조차 잘 못하는 일인데...
영아생존 프로그램 덕택에 영아 사망률과 영양실조가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오전반은 끝이 나고, 자원봉사자들과 점심식사하는 장면. 자원봉사자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평소보다 좋은 메뉴가 준비됬다.
오후에는 가정방문에 나섰습니다. 준비한 식료품 백을 전달하고, 그 가정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정방문 - 버겐카운티 장로교회와 평안교회 교인들이 4개 조로 나뉘어서 각각 2집씩을 방문했습니다. 각 조마다 통역관과 컴패션 교사가 동행해서 의사소통을 도왔습니다. 많은 집들이 흙바닥에 얇은 양철 벽과 지붕으로 지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방문한 집 앞에서 - 9명의 식구가 단칸방 양철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방문한 가족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벽돌로 지어진 집에 사는 분들도 있었지만 모두 남의 집에서 임시로 사는 분들이었고, 주인이 언제고 비워달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보통 좁은 단칸방 하나에 침대와 부엌살림 등으로 운신할 공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컴패션에 다니는 제니퍼(14살)와 띠도(3살)의 집. 이 집은 특히 가난하고 작아서 우리 모두가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일일 노동자인 가장은 오랫동안 직업이 없다가, 얼마전 도시에 Security Guard 직업을 잡았다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일일노동자의 하루 임금은 $10 정도인데, 일주일에 한, 두번 밖에는 일을 찾기 힘들고, 어떤 때는 몇 주를 일 없이 지낼 때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프로젝트로 돌아와 떠나기 전에 모두 단체사진을. 이번에 우리 버겐카운티 장로교회에서는 어른 7명, 청소년 3명이 참가했고, 워싱턴 주 평안교회에서는 어른 8명, 청소년 8명이 참석해서 모두 26명이 5일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두 교회 청소년들끼리 한장. 학생들은 금방 친해졌습니다. 두명의 엘살바도르 자원봉사자들도 보이네요.
Sion 교회에서 컴패션 어린이 사역을 총책임지고 있는 에말리 평신도. 손자들이 수두룩한 나이 60의 할머님이셨는데, 신사모님과 금방 친해졌습니다. 역시 노장 끼리는 통하는게 있나봐요.
저녁에는 좋은 식당에서 지역교회 목사님 5 부부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분들이 사역하는 지역은 갱단의 노골적 활동 때문에 우리가 찾아가기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같은 후원자 그룹이나 교회의 방문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했고, 이처럼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만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테이블에 앉은 집사님, 권사님. 테이블마다 통역관이 함께 앉아 통역을 했습니다.
이번 우리 방문을 위해 모두 5명의 현지 통역관들이 헌신적으로 따라 다니며 수고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 현지 목사님 부부들을 가운데 모시고 중보기도하는 모습.
(*여기 나오는 모든 사진들을 찍느라 수고하신 윤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