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마태 26:63-68)
예수님께서 채포되신 후에 끌려 간 곳은 산헤드린 공회 앞이었읍니다. 대제사장과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당시 유대교의 최고 법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재판하기 전부터 예수를 사형에 처한다고 정해 놓고,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진술하게 유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자 신성모독죄를 걸어 사형을 언도합니다. 만약, 이 재판이 공정한 것이었다면, 예수님이 자신의 말대로 정말 메시야인가를 심의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엔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야상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결론을 이미 내려 놓고 일을 처리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 선입견 때문에, 정치적 이유로, 혹은 내 이익을 위해서, 청탁 때문에… 그러나 그렇게함으로 우린 정의를 굽게하고, 억울한 사람을 만들고, 성령의 인도하심 을 거부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가 정말 메시야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삶에 관심을 가졌다면, 구원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으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알아보고 기도하고 그 다음에 판단합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예수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모욕을 당하거나, 하지 않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하거나, 왕따를 당하면 참기 힘들지요. 주님은 그 힘든 일을 당하시면서 어떻게 침묵하실 수 있었을까? 포기하신 걸까요?
아니, 하나님의 판단에 온전히 맡기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G은 J을 3일만에 부활시키셔서 정말 메시야였음을 증명하시지 않습니까? 산헤드린 공회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판정패를 당한 것.
저와 여러분도억울한 일을 당할 때, 맞서 싸우고 해명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고난 당한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을 통해 J의 의를 드러내신 G께서, 억울한 일을 당한 분의 손을 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5-6)